서울의 사대문
- Posted 2008/02/05 10:20
- by 재성才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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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숭례문과 흥인지문. ⓒ encyber.com
사대문 四大門
조선시대 서울 도성(都城)의 사방에 세운 성문.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정남에 숭례문(崇禮門: 지금의 서울 남대문), 정북에 숙청문(肅淸門), 정동에 흥인문(興仁門: 지금의 서울 동대문), 정서에 돈의문(敦義門)을 세웠다. 숭례문은 1398년(태조 7)에 창건하여 1448년(세종 30)에 개축하고, 1479년(성종 10) 다시 개축한 것을, 1962년 중수(重修)해서 오늘에 이른다.
숙청문은 축조한 지 18년 만인 1413년(태종 13)에 문을 폐쇄하였다가, 1504년(연산군 10)에 동쪽으로 약간 자리를 옮겨 지었는데, 그때에는 석문만 세우고 문루는 건축하지 않은 것을, 1976년 북악산(北岳山)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肅靖門)이란 편액을 걸었다.
흥인문은 1396년에 축조했는데, 다른 문과는 달리 옹성(甕城)을 쌓았다. 축조한 지 50여 년이 지난 1451년(문종 1)에 개건하고, 1868년(고종 5)에 개수한 것을 1958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돈의문(서대문)은 도성 축조 때에 현재의 사직동에서 독립문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세운 듯한데, 1413년 풍수지리설에 따라 그 남쪽(옛 서울고등학교 서쪽)으로 옮겨 서전문(西箭門)이라 하였다가, 1422년(세종 4) 다시 그 남쪽(현 서대문 마루턱)에 이건(移建)하여 문의 이름을 도로 돈의문으로 하였다. 1711년(숙종 37) 문루를 개건하였으나,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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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년 2개월의 군대 시절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정병 중 부대 행정과의 '사제안전계원'이었다. 하지만 나의 호칭은 행정병이나 사제안전계원이 아닌 방형준 이병, 방형준 일병, 방형준 상병, 그리고 방형준 병장이었다. 행정병이나 사제안전계원은 날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필자의 이름은 방형준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남대문, 동대문은 그 문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름은 아니다. 각각 숭례문과 흥인지문이라는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는 남대문, 동대문이라고 배우고 부르고 있다. 이들 문의 이름을 되찾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 2008 by 방형준(才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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