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 고지서가 하나 날아왔다. 주민세를 내란다. 인터넷으로도 낼 수 있다. 서울시ETAX시스템
에 접속하면 납부 가능하다고 친절하게 문자까지 날려주셨다. 이 나라는 액티브엑스(ActiveX)를 권장하는 나라이므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접속해야 한다. 오랜만에 익스플로러 좀 볼까?
익스플로러를 띄웠다. 얼마 전 윈도를 새로 깔아 아주 깨끗한 상태다. 서울시ETAX시스템에 접속하자마자 액티브엑스를 깔기 시작해야 한다. 익스플로러 상단에 계속 노란 줄이 내려와 '다운로드를 차단했는데 어찌할 거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스크립트가 있는데 어찌할 거냐?' 등 끊임없이 물어왔고 난 내 세금을 내려고 굳이, 어쩔 수 없이 깨끗한 내 시스템에 그들의 액티브엑스를 설치하였다. 로그인을 해야지. 로그인하려니깐 위에서 노란 줄이 또 내려온다. '너 이거 설치할 거냐?' 공인인증서 사용하려면 설치해야지 내가 힘이 있나. 이 나라 홈페이지는 뭐만 하려면 빌어먹을 액티브엑스 설치하느라 시간 다 간다.
이제 결제를 해야 한다. 뭘 잘못 눌렀는지 난 사용하지 않는 은행 페이지가 뜬다. 상단에 노란 줄은 끊임없이 내려와 지겹게도 물어본다. '너 이거 설치할 거냐?' 설치해야지 어쩌겠나. 설치했다. 설치하고 보니 그 은행용 액티브엑스인가 보다. 잘못 클릭한 내가 잘못이지. 창을 닫고 내가 사용하는 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하니 또 창이 하나 뜬다. 위에서 노란 줄이 또 내려온다.
'너 이거 계속 설치할 거냐고!'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사용 가능한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비밀번호 입력 안 하고도 카드 잘 써 왔는데 굳이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바람에 결재에 실패했다. 평생 쓸 일 없었던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건 내 잘못이라 치자. 비밀번호 없이도 인터넷에서 카드 잘만 써왔는데 갑자기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건 또 뭔가. 망할 놈의 액티브엑스 까느라 시간 버리고 성질 버리고 시스템 더러워지고 일도 못 봤다. 얼마 전에 모 은행 관계자가 나와서 몇 퍼센트 되지도 않는 다른 브라우저 사용자를 위해 시스템을 바꾸는 게 타당하냐는 기사를 읽었다. 그 관계자 자신도 억지라는 걸 잘 알 거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즐겨 사용하는 기술 때문에 온갖 브라우저들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하는가. 우리가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액티브엑스로는 아니다.
2년 정도 전에 윈도 비스타 베타 버전이 발표되면서 우리나라의 액티브엑스 사랑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고됐었다. 액티브엑스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보안에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기술인 걸 인정하고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권장하고 있다. 윈도 비스타가 발매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올해 말엔 웹 표준을 지향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8이 개발된단다. 애플의 사파리는 물론이고 모질라의 불여우도 당연히 웹표준을 지향한다. 지난 2년간 이에 대비도 소홀히 한 채 꾸준히 비표준을 권장해온 우리나라 홈페이지들이 먹통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 2008 by 방형준(才誠)
Posted by 재성才誠




